의식의 반전

Shining Tree를 푸르게 키워 주실 분은 김주연 님이에요.
달라스에서 17년 동안 학원을 운영하면서 학생들의 그림을 지도해 온 선생님이자 친구가 필요한 사람들의 따뜻한 지지자입니다.
무엇보다도 주연 님은 10년 넘게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글로 엮어내는 칼럼니스트에요.
각박한 우리네 일상생활에서 한 번쯤은 멈춰 서서 삶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는 쉼터 같은 글을 소개하는 Shining Tree 입니다.

어느 즈음인지 모르게 나이 들어감을 인식하면서 건강과 안티 에이징이라는 문구를 접하면 더 호기심 있게 읽어보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을 느끼면서 상술에 유혹되는 건지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더 갑자기 유난을 떨면서 의식을 하게 된 건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운동을 정말 싫어하는 필자가 요즘 들어서 안 하던 스트레칭도 시작하고 운동에 관심을 가져보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면 운동과 건강을 중요시하는 사회적인 흐름이 자연스럽게 온 사회 전체에 퍼진 파급 효과의 끄트머리에 필자의 의식도 마침내 전환이 생긴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넘쳐나는 건강 보조제는 각 개인이 선호하는 것이 틀려서, 친구들과 가족들이 먹으라고 권유하는 제품이 달라서 우왕 좌왕 하다가 필자에게 맞은 제품을 골라야 할 시점입니다.

이렇게 흐름을 유연하게 따라가는 면이 필자에게 있는 일면에, 필자가 갖고 있던 고정 관념으로 인해 여행지마다 신발 때문에 고생을 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항상 신는 신발 치수를 그것이 맞는 사이즈라고 한치의 의심도 없이 사이즈를 고수하며 살았습니다. 최근에야 브랜드마다 치수가 조금 크고 작게 다르게 나올 수가 있으니 사이즈를 회사마다 다르게 산다는 딸아이의 말을 듣고는 그제서야, 운동화를 사면서 운동할 때 면양말을 신을 생각을 하면서 평상시보다 큰 것을 사서 신고 나니 운동할 때 발이 편하기가 이루 말할 수없이 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행지 갈 때마다 편한 신발을 준비 안 하고는 불편한 신발을 신고 가서는 발 아프다고 걸어 다니는 내내 찡찡거리던 필자의 모습이 새삼 가족들이지만 참 밉상이었겠다 싶어서 혼자 실소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이런 필자의 모습을 떠올리니 원해서가 아니라 어떤 고착화된 관념이나 생각이 나를 지배할 때 오는 폐단이기에 항상 유연한 사고를 하려고 더 노력을 해야겠다는 위기의식을 가져봅니다. 나이가 들면서 외형적인 모습뿐만이 아니라 내 형적일 틀까지도 나이가 들어서 굳어지고 도태된다면, 어느 틈엔가 혼자만의 섬에서 갇혀지내는 아무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지 않는 소통 불가의 사람으로 전락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몇 년 전 어머니날에 딸에게 팀 켈러의 ‘결혼을 말하다’를 선물을 받았습니다. “어머 내가 결혼 생활이 몇 년인데 이런 책을 읽어야 하냐고 재미없다며”라며 한 쪽 구석에 밀어 놓았다가 그 저자의 다른 책을 읽고는 감동을 받아서 최근에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젊은 세대들이 꿈꾸는 배우자 상이 과연 본인에게 이상적인 배우자 상일지는 점검을 해야 하겠지만, 결국은 나의 주장만 옳다고 생각하지 말고 배우자를 위해 양보하고 공동체라는 마음을 서로를 아껴줄 때 결혼이 주는 진정한 행복을 배우자 모두 느낄 수 있다는 요지의 글입니다.

요즘 사회현상을 보면 남을 위한 양보나 타협은 없는 것 같습니다. 세상은 산업 혁명 이후 물질적으로는 눈부시게 살기가 좋아졌는데 정신적인 내면으로는 더 많이 고독해지고 외로워지고 있습니다. 가족이 있어도 친구가 있어도 서로를 잘 이해를 못 하고 더 많은 우울증과 고독사가 늘고 있습니다. 문영의 이기들을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여 더 많은 혜택을 개인들이 가져가면, 각 개인들의 삶이 더 윤택하고 행복해지고 사회도 더 행복하게 바뀌어야 하는데, 각 사회마다 쏟아져 나오는 뉴스들을 보면 고독사가 늘어가고 범죄의 내용들도 더 잔인 무도한 일들이 많습니다. 과연 인간이 이렇게 잔인할 수가 있을까 하는 기사들을 접하면서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더 잔인해질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참 공포스럽습니다.

우리는 희망이 없는 사회에 사는 걸까요? 나만, 내 가정만 잘 살면 되는 걸까요? 내 자녀가, 내가 일하는 일터가, 사회가 희망이 없는 사회에 속해 있다면 결국은 언제 가는 우리 가정에도 그 어둠이 들어오는 것은 자명한 이치입니다. 운동을 싫어하던 필자가 운동에 관심이라도 갖게 된 것처럼 결국 사회의 흐름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의식의 흐름이 서서히 세대의 흐름을 따라 전환되어 가는 수순이겠지요. 이런 흐름이 좋은 흐름인지 나쁜 흐름인지를 분간해야 할 혜안이 필요한 시대에, 나의 주장만 마음에 담고 살기 전에 좋은 영향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지인이나 가족이 있다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드는 연유는, 좋은 인연을 만들기가 점점 더 어려운 숨 가쁘게 돌아가는 세상의 한복판에 서있기 때문입니다. 생각의 전환 만이 아니라 반전을 한 번 해 보는 것이 안티 에이징의 지름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작품명: Le Violon d’Ingres, 1924  by Man Ray (1890-1976)
미국에서 태어나 유럽에서도 활동하기도 했던 Man Ray는 Dada와 초현실 주의의 미술계의 흐름에 많은 역할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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